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글로벌 팬데믹이 가져 온 제품 개발 패러다임의 변화
2020년은 ‘코로나19로 시작해 코로나19로 끝난 한 해’라는 이야기가 적잖게 들린다. 그만큼 코로나19의 글로벌 대유행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사회와 산업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충격은 변화로 이어졌고,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조 및 건축 산업의 침체로 투자가 위축되고, 이동제한과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소프트웨어의 도입과 사용 패턴이 달라졌다.
이런 가운데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고민과 솔루션을 찾는 모습을 보였다. 디지털화 또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큰 방향은 지속되었지만, 속도는 빨라지고 범위는 넓어졌다. 클라우드나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의 기술 도입도 조금씩 본격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클라우드, 유연성과 속도로 위기에 대응한다
제조와 건축 분야는 다른 IT 산업과 비교하면 클라우드 전환이 늦은 산업군으로 꼽혀 왔다. 설계뿐 아니라 생산과 건설이라는 물리적인 과정까지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다는 점과 함께, 민감한 기업 자산에 대한 ‘보안’의 이슈도 클라우드 도입의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변화는 천천히 진행되어 왔고,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다가온 비대면 상황에서 효과적인 해결책으로 여겨지면서 클라우드 전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 리스케일은 현대·기아차의 클라우드 시뮬레이션 환경을 구축할 계획이다.
작년에는 리스케일(Rescale)과 현대기아자동차가 시뮬레이션 중심의 클라우드 기반 디지털 R&D 환경 구축에 나서고, 아마존 웹 서비스(AWS)와 삼성엔지니어링이 EPC 협업 설계 및 데이터 레이크(data lake) 환경을 만드는 등 국내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 설계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모으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게 한 삼성엔지니어링의 데이터 레이크 프로젝트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인프라의 관점에서 클라우드는 속도와 유연성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모습이다. 이전에는 설계자를 몇 명 늘릴지에 대한 계획을 마련하고, 여기에 맞춰서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추가로 확보하거나 하드웨어 인프라를 늘리는 작업을 몇 개월 전부터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업의 프로세스였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예측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에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주요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저마다 클라우드 포트폴리오의 확대 또는 궁극적으로 자사 솔루션의 완전한 클라우드 전환이라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다쏘시스템은 클라우드 기반의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3DEXPERIENCE platform) 위에서 자사의 소프트웨어 제품군을 앱 형태로 제공한다는 전략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작년에는 설계 솔루션인 솔리드웍스까지 클라우드 플랫폼과 연결하면서, 궁극적으로 풀 클라우드 CAD로 간다는 전략을 소개했다. 다쏘시스템은 자사 소프트웨어의 클라우드 버전을 속속 내놓으면서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AWS와 협력을 통해 제조산업의 클라우드 전환 속도를 더욱 높인다는 계획이다.
▲ 다쏘시스템은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 기반의 클라우드 CAD를 확대할 계획이다.
오토데스크는 퓨전 360(Fusion 360)과 BIM 360 등의 클라우드 솔루션을 내놓은 이후 클라우드 전략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퓨전 360은 개념설계-상세설계-설계검증-제조, 가공 및 측정까지 클라우드 위에서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작년에는 CAM 솔루션인 파워밀(PowerMill)과 적층가공 최적화 솔루션 넷팹(Netfabb)까지 퓨전 360과 통합했다. 또한, 오토데스크는 BIM 360을 포함해 건설 생애 주기 전반에 걸친 데이터 연결을 클라우드 기반에서 지원하는 ‘오토데스크 컨스트럭션 클라우드(Autodesk Construction Cloud)’를 내놓았다.
▲ 퓨전 360과 넷팹의 통합은 적층제조와 설계의 통합을 강화할 전망이다.
PTC는 2019년 클라우드 CAD인 온쉐이프(Onshape)에 이어 작년에는 클라우드 PLM 개발사인 아레나 솔루션즈(Arena Solutions)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반의 CAD 및 PLM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미드마켓 시장을 공략한다는 것이 PTC의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온쉐이프, 아레나 솔루션즈, AR 솔루션인 뷰포리아(Vuforia)를 합쳐 SaaS 사업부를 확대했고, 온쉐이프의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전체 솔루션의 SaaS화를 추진한다는 아틀라스 플랫폼(Atlas platform) 비전을 선보였다.
▲ 2019년 PTC가 인수한 온쉐이프는 SaaS 아키텍처의 기반이 될 전망이다.
지멘스 디지털 인더스트리 소프트웨어는 로코드(low-code)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인 멘딕스(Mendix)를 기반으로, 자사의 소프트웨어 포트폴리오인 엑셀러레이터(Xcelerator)의 PLM, MES, IoT 등을 모두 클라우드 아키텍처에서 구동할 수 있게 한다는 전략을 소개했다. 여기에 더해 PLM인 팀센터 X(Teamcenter X)와 3D 디자인의 협업 검토가 가능한 팀센터 셰어(Teamcenter Share) 등 클라우드 기반 솔루션을 확대할 계획이다.
▲ 지멘스의 클라우드 PLM 솔루션 팀센터 X
CAE 분야에서는 대규모의 시뮬레이션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HPC(고성능컴퓨팅) 인프라 측면에서 클라우드의 이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제품의 복잡도가 증가하면서 빠른 개발 사이클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의 인프라를 유연하게 확보하고 사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HPC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앤시스는 마이크로소프트 애저(Microsoft Azure) 기반의 앤시스 클라우드(ANSYS Cloud)를 꾸준히 강화하면서, 앤시스 메커니컬(ANSYS Mechanical)과 플루언트(Fluent)를 시작으로 HFSS, SIwave 등 지원 솔루션의 범위를 꾸준히 넓히고 있다.
알테어는 라이선스 활성화 및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하는 통합 포털 사이트 알테어 원(Altair One)과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닛 기반 라이선스를 내세웠다. 또한, HPC 솔루션 기업인 유니바(Univa)와 엑셀러스(Ellexus)를 인수하고 HPC 워크로드 관리와 모니터링, 최적화 등을 지원하는 솔루션 포트폴리오를 확보했다.
제조산업 안팎을 아우르는 디지털 스레드의 확장
기존에는 설계, 시뮬레이션, 제조, 서비스 등 각 영역별로 디지털화가 진행되어 왔다면, 이제는 전체 제품 사이클에 걸쳐 디지털 데이터의 매끄러운 흐름을 갖추고, 이를 활용해 기업 전반에서 디지털화의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뜻에서 ‘디지털 스레드(digital thread)’라는 개념이 주목을 받는 모습이다.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디지털 스레드에 대해 ‘하나의 데이터 소스’를 기반으로 디지털 모델을 생성하고, 이 디지털 모델을 가상 테스트나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하며, 생산을 위한 데이터로 활용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제조에서 끝나지 않고 판매나 서비스 단계까지 디지털 제품 정보의 활용을 확장하는 한편, 전체 데이터와 프로세스를 관리하고 조율하는 것까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PTC는 CAD와 PLM뿐 아니라 IoT(사물인터넷), AR(증강현실)로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제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전체 루프 사이클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로크웰 오토메이션과 협력을 통해 설계부터 운영, 유지보수 및 최적화까지 모든 라이프사이클 단계에 걸쳐 디지털 스레드 솔루션을 확장하는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오토데스크는 제조와 건축 분야의 융합(컨버전스)을 내세우고 있다. 퓨전 360에서 선보인 제너레이티브 디자인(generative design) 기술을 건축 분야에 접목해 최적의 인테리어 구성을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모듈러(modular) 공법, 프리패브리케이션(prefabrication), DfMA(Design for Manufacturing and Assembly) 등 제조 분야의 제조 기술을 건축 분야에 접목하는 시도 역시 진행 중이다.
지멘스 디지털 인더스트리 소프트웨어는 제품(Product)·생산(Production)·성능(Performance)의 디지털 트윈이라는 포괄적인 디지털 트윈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CAD와 시뮬레이션, 공장의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 IoT 등 각 분야의 기술과 솔루션을 연동함으로써 제품의 개발과 생산, 사용까지 아우르는 디지털 스레드를 구현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지멘스 디지털 인더스트리 소프트웨어는 MBSE(모델 기반 시스템 엔지니어링) 및 MBST(모델 기반 시스템 테스팅)에 대응하면서 디지털 제품 개발을 위한 다분야의 기술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멘토(Mentor)를 지멘스 EDA(Siemens EDA)로 개편하고 회로 설계를 위한 P&R 솔루션 업체 아바타(Avatar), 화학 시뮬레이션 업체 컬기(Culgi) 등을 인수하면서 디지털 제품 개발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확장하는 모습이다.
▲ 알테어는 에스엔위즈 인수 이후 발포성형 해석 솔루션 '인스파이어 폴리폼'을 출시했다.
CAE 분야에서는 제품 개발 단계의 시뮬레이션을 넘어 생산 공정에 대한 시뮬레이션으로 디지털 프로세스를 확장하고 있다. 이에스아이, MSC소프트웨어, 오토폼엔지니어링 등 여러 CAE 소프트웨어 업체가 포밍이나 웰딩 등 공정의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다. 인스파이어(Inspire)를 중심으로 매뉴팩처링 소프트웨어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는 알테어도 작년에 국내 기업인 에스앤위즈를 인수하면서 폴리우레탄 발포 성형 해석 솔루션을 추가했다.
■ 자세한 내용은 '2020 국내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시장조사' 특집기사에서 볼 수 있다.
작성일 : 2021-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