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윈도] 탄소 중립 시대, 선박용 엔진에 대한 도전과 가상 제품 개발의 역할
국제 사회에서 강력한 온실가스 규제가 진행됨에 따라 기존의 화석 연료 사용이 제한되면서, 오랜 기간 각종 기계장치의 독보적인 동력원 역할을 담당해 온 내연기관의 위상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이미 자동차 시장은 내연기관의 종말을 선언하고 배터리, 연료전지 등 대체 동력원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으며, 조선/해운업계도 온실가스의 배출 감축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을 받고 있다. 다만, 선박용 엔진의 경우 높은 에너지 밀도를 대체할 동력원을 찾기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며, 따라서 저탄소 및 무탄소 연료의 사용이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그림 1>과 같이 이미 저탄소 연료를 사용한 세계 최초의 4-Stroke 메탄올 엔진에 대한 선급 인증을 2022년 9월 취득하여 기술력을 입증한 바 있으며, 수소 및 암모니아 엔진 등 미래 친환경 선박 엔진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급변하는 다양한 연료에 대한 시장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제품의 개발 속도는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탄소 중립 시대에 선박용 엔진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고, 신속한 제품 개발을 위한 가상 제품 개발(Virtual Product Development, 이하 VPD) 기술의 발전 방향 및 그 역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림 1. 현대중공업의 세계 최초 선박용 4-Stroke 메탄올 엔진 개발
탄소 중립 시대, 선박용 엔진의 도전과 역할
자동차 및 건설 장비 등 육상의 기계장치에 사용되는 동력원은 이미 급격한 전동화가 진행 중이다. 매스컴에서는 이들 산업계 전반에서 더 이상 내연기관의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즉, 기존의 디젤 및 가솔린 엔진은 빠르게 배터리 또는 연료전지로 대체될 전망이다.
선박 및 해운분야의 대외 환경 역시 녹록치 않다. 국제해사기구(IMO :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에서는 2016년 NOx 규제를 시작으로 2017년 선박평형수 규제, 2020년 SOx 규제를 발효했다. 나아가 최근에는 2030년 CO2 Emission 40% 감축 및 2050년까지 온실가스(Green House Gas : GHG) 50% 감축 목표를 제시함과 더불어, 구체적인 규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조선사는 이러한 규제에 적절히 대응하면서도 제반 비용(Total Cost Ownership : TCO)을 최소화하는 효율적인 친환경 해법을 해운사에 제시해야 하는 도전에 당면해 있다.
DNV Maritime(2020)의 조사에 따르면 선박의 탈탄소화는 이미 임계점을 항해 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탈탄소화를 위해 2030년까지 CO2 배출량의 55%를 감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하였으며, IMO에서는 기술적 조치인 현존선 에너지 효율지수(EEXI : Energy Efficiency Existing Index)와 운항적 조치인 탄소 집약도 지수(CII : Carbon Intensity Indicator)를 도입하여 신조 선박뿐만 아니라 약 3만 척 이상의 현존 선박에 대해서도 규제를 확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사회의 친환경 규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으로 배터리나 연료전지가 아닌 LNG, 메탄올, 암모니아 등 친환경 연료 엔진을 사용한 새로운 탄소 중립선박을 제시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박 엔진분야에서 친환경 연료 엔진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첫째, 탈탄소화에 대응 가능한 다양한 기술들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미 단기적으로 저탄소 연료의 하나인 액화천연가스(Liquefied Natural Gas : LNG)를 이용한 내연기관의 보급이 확대되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순탄소배출량이 제로인 E-Fuel을 내연기관 또는 연료전지에 적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둘째, 현존하는 배터리 기술로는 대형 상선에 대한 전기 추진 동력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9th AVL Large Engine Techdays (2021)에 따르면, 1만 4770 TEU급 컨테이너 선을 기준으로 아시아-유럽 노선에 소요되는 약 7000톤의 HFO 연료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약 16만 톤의 배터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부피로 환산해 보면 거의 컨테이너 화물과 유사한 수준의 배터리 저장공간이 추가로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친환경 연료가 CO2 감축률이 가장 높은 대안일 것으로 판단된다.
대형 선박의 수명주기(life cycle)가 25년~30년인 점을 감안하면, 2050년까지 CO2 저감 목표 달성을 위해 주어진 시간은 매우 짧다. 현대중공업에서는 기존의 LNG뿐만 아니라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등의 탄소 중립연료 및 수전해와 연료전지까지 2025년까지 상용화를 목표로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제품을 동시다발적으로 신속히 개발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선박용 엔진 개발의 특성과 가상 제품 개발의 필요성
선박용 엔진은 크게 선박 내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용 엔진과 프로펠러와 연결되어 선박의 추진동력을 얻는 추진용 엔진으로 구분할 수 있다. 6000 시간 내외의 비교적 작은 수명을 요구하는 자동차와는 달리 선박용 엔진은 12만~18만 시간 이상의 수명이 필요하며, 그 크기와 제작/시험 비용 때문에 시제품 제작과 개발시험을 통한 설계 검증이 매우 어렵다. 또한 자동차와 달리 선박용 엔진은 기본적으로 중후 장대한 수주 산업으로 선박별로 요구하는 조건이 매우 상이하여 ‘초소량, 초다품종’이라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이에 따라 선박용 엔진 개발은 발전용의 경우에는 대표 기통에 대해서만 시제품 제작/검증 후 양산을 실시하고 있으며, 추진용 엔진의 경우에는 심지어 수주 후 초도 제작 및 검증까지 실시한다. 이러한 비즈니스 특성상 근본적으로 선박용 엔진의 개발은 시뮬레이션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며, 이에 국내 최초로 독자개발된 H21/32 힘센엔진(1MW급 선박 발전용 디젤엔진) 모델부터 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구개발이 이루어졌다.
그림 2. 엔진 개발 트렌드 및 가상 제품 개발 적용 방안 1
그림 3. 엔진 개발 트렌드 및 가상 제품 개발 적용 방안 2
그림 4. 엔진 개발 트렌드 및 가상 제품 개발 적용 방안 3
기존 엔진 개발에 비교적 충분한 연구개발 시간이 주어진 것과 달리, 탄소 중립 연료 엔진 개발은 글로벌 환경규제에 대한 시한이 정해져 있으며 다양한 연료에 대한 제품 개발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므로 연구개발의 속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그림 2~4>와 같이 디젤 엔진 라인업 구축에 12년이 걸린데 비해 Gas/DF 엔진의 구축은 6년이 소요되는 등 시뮬레이션 기반 설계 기술은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나, 앞서 언급한 메탄올 엔진의 경우 개발기간이 단 1.5년에 불과했으며 향후 신규 제품에 대한 개발 기간은 더욱 단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장 환경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VPD 기술은 한 번 더 큰 도약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다. 이를 위해서 기존의 시뮬레이션 기반 개념 설계 프로세스를 더욱 합리화하고, 시뮬레이션과 계측 데이터를 다각도로 활용하여 다기종설계에 대한 양산 품질 예측을 고도화해야 하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개념 설계와 양산단계의 문제 해결 부하를 동시에 줄여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의 개발 절차에서 탈피하여 VOC 및 품질 문제를 개발 프로세스에 적극 반영하고, 기존에 축적된 데이터베이스 및 경험으로부터 트렌드 등의 정보도 개발 프로세스에 융합되어야만 한다. 또한, 기존의 시스템화 한계, 동일 타입 기통별 특성, 초소량 다품종 등 설계 제약사항은 각각 표준화 로직을 시스템화하고 예측 확장 기술 및 핵심(core) 기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시뮬레이션 주도 설계(simulation-driven design) 기술을 고도화하여 궁극적으로 시뮬레이션 결과의 시험 대체, 초소량 및 초다품종, 품질 문제 대응이 필요하며, 설계 검증 목적으로만 주로 활용되던 계측 결과도 데이터베이스 기반 모델 개발, 개념 설계 방향 정립 및 테스트 효율 증가 목적 등에 활용 가능한 데이터 주도 설계(data-driven design)의 개념으로 확장을 통해 VPD 기술에 대한 변화를 모색해야만 한다. 이러한 시뮬레이션 및 데이터 주도 설계(simulation & data driven design)는 궁극적으로는 설계 및 표준화에 대한 절차를 융합해 주는 역할을 목표로 해야만 한다.
그림 5. 개념 설계 및 양산 설계 단계의 가상 제품 개발 방법론 적용 사례 1
그림 6. 개념 설계 및 양산 설계 단계의 가상 제품 개발 방법론 적용 사례 2
디지털 엔지니어링과 VPD
<그림 5~8>과 같이 이미 선박용 엔진의 각 개발 과정에서 이러한 VPD 기반 디지털 엔지니어링(digital engineering)의 다양한 접목이 시도되고 있다.
개념 설계 단계에서는 기존에는 계측 데이터에만 의존하여 수개월씩 소요되던 엔진 흡배기 포트 설계 기간을 최근에는 플랫폼화를 통한 해석 데이터 기반 설계로 1일 이내로 단축하였다. 또한, 위상 최적화를 통한 베이스프레임의 경량화 개념 설계나 기통과 무관한 엔진 블록 mother model의 위상 최적화를 통한 신속한 다기통 양산 설계 기술에도 디지털 엔지니어링이 활용되고 있다.
시제품 TAT(Type Approval Test) 및 양산 과정에도 역시 시뮬레이션과 데이터를 접목한 VPD 기술이 활발히 적용 중이다. 대표적으로 DF 엔진의 메탄슬립 저감을 위해 물리적 모델(physics model)이 아닌 테스트 기반 메타 모델을 통해 가상 최적화를 수행하여 최적 운전점을 도출하였다. 또한, 디젤 엔진의 성능에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환경 조건(고도, 기온 등)을 고려하여 성능을 예측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기반 성능 메타 모델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엔진의 실시간 성능 견적이 가능토록 하였다.
그 이외에도 Digital Twin in SiLS 기반 온보드 가상 시운전 및 제어 파라미터 자가 튜닝을 통한 원격 커미셔닝에 인건비 및 시간을 대폭 절감하였다.
그림 7. 개념 설계 및 양산 설계 단계의 가상 제품 개발 방법론 적용 사례 3
그림 8. 개념 설계 및 양산 설계 단계의 가상 제품 개발 방법론 적용 사례 4
스마트 전환(Smart Transformation)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박용엔진의 B2B(Business to Business) 특성 상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의 한계로 인해 양산 설계의 모든 데이터를 개발 단계에서 확보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A/S 단계의 풍부한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여 개발 프로세스에 접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대중공업 엔진연구소에서는 <그림 9>와 같이 기존의 시뮬레이션 및 데이터 주도 설계를 통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과 더불어, 고객으로부터 수집된 A/S 정보를 제품 개발에 접목하는 아날로그 전환(analog transformation), 그리고 이 두 그룹을 연결한 스마트 전환(smart transformation)의 전략을 수립하여 선박용 엔진 시장에 적합한 가상 제품 개발 방법론의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를 위해 현대중공업에서는 SmartLab, Hi-BRAIN, SMART-LiGHT, Hi-EMS 등 연구개발부터 제품 인도 후까지 각 개발 단계별로 데이터 취득 플랫폼을 시스템화하여 방대한 기술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으며, 이러한 빅데이터(big data)를 기반으로 궁극적으로는 기계의 자가 학습 및 AI(인공지능) 기반 제품 설계를 하는 스마트 엔진 5.0(Smart Engine 5.0)으로 나아갈 중장기 목표의 달성에 매진하고 있다.
그림 9. 현대중공업 엔진연구소의 스마트 전환 전략
맺음말
선박 추진 분야에서 내연기관은 미래에도 여전히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바로 지금이 탈탄소 목표를 위해 대체 연료 엔진을 개발하고 친환경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골든 타임으로 생각된다. 반면, 조선 해양 산업 분야 고객의 요구는 갈수록 다양화 및 세분화되고 있어, 기존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로는 고객 맞춤형 제품의 적기 공급에 한계가 있다.
현대중공업 엔진연구소는 디젤 엔진과 Gas/DF 엔진 개발을 거쳐 축적된 해석 기술과 양산/개발 데이터의 디지털 전환 및 빅데이터 플랫폼 기반 사용자 경험을 제품 개발에 융합함으로써, 다양한 고객 수요에 부합하는 신속하고 신뢰성 있는 제품 개발 기술의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 이 글의 내용은 2022년 11월 18일 진행된 ‘CAE 컨퍼런스 2022’의 발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안성찬
현대중공업 엔진연구소의 상무로, 중속 발전/선박용 국산 HiMSEN 엔진 개발을 위한 내구, 방진 및 트라이볼로지 설계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환경규제 대응을 위한 친환경 엔진 개발 및 신모델 개발 효율 극대화를 위한 가상제품개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홈페이지)
■ 기사 내용은 PDF로도 제공됩니다.
작성일 : 2022-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