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와 산업데이터 인프라
산업데이터 스페이스와 제조업의 미래
우리나라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업데이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데이터 활용 잠재력은 매우 크다. 국내에는 이미 다양한 산업분야의 데이터 플랫폼이 구축되어 운영 중이다. 산업데이터의 잠재력을 성장 동력으로 연결하려면 공공기관과 기업 내부에 쌓여 있는 방대한 데이터를 끄집어내고 기관 간에 데이터의 공유와 연계를 이루는 데이터인프라 구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미지 출처 : 123RF)
기업은 물론 한 국가의 산업경쟁력도 디지털 전환(DX)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디지털 전환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을 모든 사업영역에 적용함으로써 조직문화, 비즈니스 모델과 프로세스 등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켜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부터 소비에 이르는 일련의 경제활동들이 지능화되고 효율화되고 있다.
보스톤 컨설팅 그룹(Boston Consulting Group)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선도기업들은 디지털 후발기업들에 비해 수익성장률(earnings growth)이 1.8배 더 높고 총 기업가치(total enterprise value) 성장률은 2배 이상이라고 한다.
또한, 세계적 시장조사기관인 Statista에 따르면 전세계 디지털전환기업의 생산액은 2018년 13.5조 달러에서 2023년 53.3조 달러로 증가하면서 전세계 GDP의 절반을 넘어섰다.
한편, 디지털기업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전세계 시가총액 10대 기업의 절반은 CNPC, 엑손모빌 등과 같은 에너지기업이었으나 지금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구글), 테슬라, 엔비디아, 메타(페이스북) 등 7개의 디지털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데이터의 90%는 산업데이터이나 60∼80%가 활용되지 못하고 사장
디지털 전환의 중심에는 데이터가 자리잡고 있다. 디지털기술을 적용하여 분산된 데이터를 가치 있게 변환시키는 것이 디지털 전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기업내부에 쌓여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데이터화하고 이러한 데이터를 분석하면 비즈니스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거나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은 방대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고유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플랫폼 이용자들의 거래방식, 소비패턴 등의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여 고객의 요구를 확인하거나 새로운 비즈니스기회를 찾아가며 물류, 금융, 헬스케어, 클라우딩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왔다.
데이터는 크게 개인정보데이터와 산업데이터로 구분해볼 수 있다. 개인정보데이터는 개인의 취향, 동선, 사회관계, 소비행동 등으로 검색, SNS, 간편지불 등의 과정에서 생성된다.
GAFA(Google, Amazon, Facebook, Apple)는 개인정보 데이터를 활용하여 오늘날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10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편, 산업데이터는 제품개발, 생산, 유통, 소비 등 산업활동 전과정에서 생성되며 전체 데이터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산업데이터는 연구개발(R&D)에서 생산, 유통‧마케팅에 이르는 모든 밸류체인에서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높이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며, 더 나아가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산업데이터는 활용도가 높지 않으며 산업데이터 분야에 GAFA와 같은 지배적 사업자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
시장조사기관인 forrester research에 따르면 기업내 축적된 데이터중 60∼73%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EU 집행위원회도 산업데이터의 80%가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산업 데이터가 기업의 영업비밀을 포함하고 있는 데다, 각 기업 간의 데이터 형식과 호환성이 없어 데이터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그 만큼 성장잠재력은 크다. 2022년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데이터법(Data Act)으로 산업데이터 활용이 제도적으로 보완되면 2028년까지 2,700억 유로(407조원)의 추가 GDP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 데이터 과점, EU와 일본은 산업데이터에 주력
현재 세계 데이터시장은 개인정보를 중심으로 GAFA가 장악해가고 있다. 미국 정부는 GAFA 등 플랫폼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통상(Digital Trade)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2017년 미무역대표부(USTR)가 매년 발간하는 국별 무역장벽보고서에 별도의 디지털무역장벽분야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2018년 11월 체결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는 처음으로 디지털통상 챕터가 신설되고 데이터이전 자유화, 데이터지역화 금지, 소스코드 공개금지 등의 규범이 담긴다. 2019년 10월에는 최초의 독자적인 국제조약이면서 USMCA보다 더욱 개방된 모습으로 미일간 디지털통상협정(USJDTA)이 체결되었다. 한편, 2019년부터 시작된 WTO 디지털통상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모든 서비스에서 데이터이동 자유화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자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는 전세계 데이터의 1/4 이상이 생성되고 있으며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이 중국내 데이터시장을 주도해 가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9년 데이터를 토지, 노동, 자본, 기술과 함께 새로운 국가 생산요소로 규정하고 데이터 활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지난 2023년 10월에는 데이터의 유통과 개인정보, 보안 등을 위해 국가데이터국을 설치하여 데이터 통제를 강화한 바 있다. 여기에 네트워크안전법, 개인정보보호법, 데이터안전법 등 법률을 제정하여 자국내 데이터의 해외반출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EU는 미중 IT기업의 데이터 과점에 대응하고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데이터정책에 집중한다. 특히, 아마존, 구글 등 거대 미국 클라우드 기업으로부터 자신들의 기술 노하우를 지키고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해, EU는 2020년 EU 데이터전략을 발표하고 여기서 유럽 공통 데이터 스페이스(European Common Data Spaces)를 제시한다.
데이터 스페이스는 데이터들이 원래 있던 곳에 있으면서 필요할 때마다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가이아-X, 카테나-X, 매뉴팩처링-X 프로젝트 등이 추진되고 있다. 가이아-X는 각 산업 분야를 연결하는 가장 포괄적인 데이터 스페이스이고, 카테나-X는 가이아-X 중 자동차산업의 공급망간에 데이터를 교환·공유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일본은 세계 최고수준 로봇, 센서를 바탕으로 공장자동화 등의 제조현장에서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이에 애플이나 구글 등 미국 디지털기업의 개인정보데이터에는 못 따라가지만, 강력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산업데이터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2016년 관민 데이터활용 기본법, 2017년 데이터 거래규정, 2018년 생산성향상 특별조치법 등의 제정을 추진하였으며, 지난해 4월 우라노스 에코시스템(Ouranos Ecosystem)을 출범시켜 산업계 전반에 데이터공유와 연계를 꾀하고 있다.
산업데이터의 공유와 활용을 늘리기 위한 인프라 구축 나서야
우리나라는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1960∼1980년대 정부주도로 철강, 석유화학 등의 산업을 육성하고 1990∼2000년대 세계화와 중국성장을 수출 확대로 연결시켰다. 그러나 최근 대외적 여건을 보면 산업의 성장엔진은 식어가고 수년 내 수출 절벽이 현실화될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
외적으로는 미중 패권경쟁 격화, 선진국의 산업정책 부활, 보호무역 확산 등으로 글로벌가치사슬(GVC)이 급속하게 파편화, 블럭화되면서 우리의 미래 먹거리와 수출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첨단산업에서 자급률을 높이고 있고, 미국, 일본, EU 등 선진국들도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 육성에 열을 올리면서 우리산업이 설자리를 점점 좁혀오고 있다.
대내적으로도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년간 주력 수출품목의 변화가 없는 등 산업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다. OECD 최하위 출산율과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학생들은 공대를 포기하고 의대로 진로를 바꾸고 있다. 심각한 데이터 규제로 인공지능, 메타버스와 같은 미래 새로운 산업의 발전 기반도 취약한 상태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빅데이터 활용순위는 26위로 한참 뒤져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업데이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데이터 활용 잠재력은 매우 크다. 반도체‧조선 세계 1위, 석유화학‧철강‧로봇 세계 5위, 자동차 세계 7위의 세계적인 제조기반에 5G 등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어 디지털 기술을 제조업에 접목하기가 수월하다. 연구개발-조달-생산-유통-소비에 이르는 가치사슬(Value chain) 전반에 디지털 전환(DX)을 확산시키면 디지털 제조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 의료기술과 정보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데이터, 개인정보에 대한 과감한 규제완화가 이루어진다면 원격의료,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제2의 반도체신화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여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에 혁신역량을 집중한다면 스마트제조, 스마트팜과 같은 새로운 혁신서비스가 수출의 중심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에는 이미 다양한 산업분야의 데이터 플랫폼이 구축되어 운영 중이다 그러나 플랫폼 참여자는 개인정보, 영업비밀 보호 등 데이터 공유나 거래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부담으로 양질의 데이터 제공에 소극적일 뿐 아니라 표준화, 상호운용성 등 데이터 공유·활용을 위한 토대도 부족한 실정하다. 데이터는 크기가 클수록 그리고 서로 다른 데이터가 융합될수록 더욱 큰 가치를 창출하는 네트워크 효과가 있다. 산업데이터의 잠재력을 성장 동력으로 연결하려면 공공기관과 기업 내부에 쌓여 있는 방대한 데이터를 끄집어내고 기관 간에 데이터의 공유와 연계를 이루는 데이터인프라 구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리고 구축된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수익을 창출하고 창출된 수익이 모든 참여자에게 돌아갈 수 있고 참여자들이 안전하게 데이터를 공유·거래할 수 있으며 개방적이고 투명한 표준방식으로 데이터가 연계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거대 플랫폼 기업을 앞세워 세계 데이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EU는 2014년부터 산업데이터를 중심으로 공유와 연계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으며 일본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2년 산업디지털전환촉진법이 제정되고서야 산업데이터 활용기반 구축이 본격화된다. 이 법에 따라 지난 2023년 1월 제1차 산업디지털전환 종합계획이 수립되었고 산업전반에 인공지능(AI)을 내재화시키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많이 뒤져 있다. 산업데이터의 공유·활용을 위한 프로젝트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산업이 한층 더 도약하고, GAFA를 뛰어 넘는 산업데이터 거인이 우리나라에서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용래 교수
경희대학교 첨단기술비즈니스학과
전 특허정장
작성일 : 2025-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