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가입
  • |
  • 로그인
  • |
  • 장바구니
  • News
    뉴스 신제품 신간 Culture & Life
  • 강좌/특집
    특집 강좌 자료창고 갤러리
  • 리뷰
    리뷰
  • 매거진
    목차 및 부록보기 잡지 세션별 성격 뉴스레터 정기구독안내 정기구독하기 단행본 및 기타 구입
  • 행사/이벤트
    행사 전체보기 캐드앤그래픽스 행사
  • CNG TV
    방송리스트 방송 다시보기 공지사항
  • 커뮤니티
    업체홍보 공지사항 설문조사 자유게시판 Q&A게시판 구인구직/학원소식
  • 디렉토리
    디렉토리 전체보기 소프트웨어 공급업체 하드웨어 공급업체 기계관련 서비스 건축관련 업체 및 서비스 교육기관/학원 관련DB 추천 사이트
  • 회사소개
    회사소개 회사연혁 출판사업부 광고안내 제휴 및 협력제안 회사조직 및 연락처 오시는길
  • 고객지원센터
    고객지원 Q&A 이메일 문의 기사제보 및 기고 개인정보 취급방침 기타 결제 업체등록결제
  • 쇼핑몰
통합검색 "제10회 국제3D프린팅코리아엑스포"에 대한 통합 검색 내용이 143개 있습니다
원하시는 검색 결과가 잘 나타나지 않을 때는 홈페이지의 해당 게시판 하단의 검색을 이용하시거나 구글 사이트 맞춤 검색 을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CNG TV 방송 내용은 검색 속도 관계로 캐드앤그래픽스 전체 검색에서는 지원되지 않으므로 해당 게시판에서 직접 검색하시기 바랍니다
목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문화유산 분야의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와 활용 사례 (8)   지난 호에서는 필사본 고서에 나타난 필적과 필사본 고서에 관한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과 인문학 및 문화유산분야에서의 활용 사례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16세기에 쓰여진 원이 엄마의 절절한 한글 편지, 숙명공주가 받은 언간을 모아 놓은 17세기의 편지, 18세기의 정조와 정조 부인 효의왕후의 한글 소설 필사본, 격변하던 19세기에 명성황후가 쓴 편지, 현대 한글 서예의 명필 세 자매에 관하여 소개하였다. 한글 필사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목판본 고서 자료 수집과 정리의 중요성, 조선 후기부터 개화기까지 크게 유행했던 상업적 목적으로 출판된 목판 방각본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중요성과 인문학 및 문화유산분야에서의 연구 및 활용 사례에 관하여 살펴본다.   ■ 연재순서 제1회 이미지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 제2회 서화, 낙관, 탁본 데이터베이스 제3회 옛 사진 데이터베이스 제4회 한지 데이터베이스 제5회 고지도 데이터베이스  제6회 고서 자형 데이터베이스 제7회 필사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8회 목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9회 금속활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10회 근대 서지 데이터베이스  제11회 도자기 데이터베이스 제12회 안료 데이터베이스   ■ 유우식 웨이퍼마스터스의 사장 겸 CTO이다. 동국대학교 전자공학과,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과 미국 브라운대학교를 거쳐 미국 내 다수의 반도체 재료 및 생산설비분야 기업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재료, 공정, 물성, 소재분석, 이미지 해석 및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객원연구원, 국민대학교 산림과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문화유산회복재단 학술위원이다. 홈페이지 | www.wafermasters.com   그림 1.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빼어난 서체로 정교하게 양각으로 새겨진 합천 해인사에 소장된 ‘팔만대장경’ 목판(출처 : 국가유산청)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우리나라는 인쇄기술 역사상 매우 의미 있는 기록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꼽을 수 있다.(<그림 1>의 위쪽)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을 조성한 신라 경덕왕 10년에 해당하는 751년 또는 그 이전에 목판으로 인쇄하여 두루마리 형태로 만든 인쇄물이다. 경문은 1행 8~9자 정도 적힌 것으로 너비가 약 8cm로 인쇄된 폭은 6.5~6.7cm이고, 펼쳤을 때의 길이 약 620cm에 이른다.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의 일부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소개되고 있었으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제작연도와 제작자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국제 사회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 측이 705년에 낙양에서 인쇄한 것을 신라에서 불국사에 봉안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경의 본문 가운데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 집권 당시에만 사용되었던 무주제자(武周制字)라는 글자도 포함되어 있어 우리나라의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무주제자가 사용된 예는 지(地)가 ‘.’로, 초(初)가 ‘..’로 기록된 것 등이 있다. 중국에서는 제작연도가 적혀있지는 않지만 ‘묘법연화경’이 690년에 간행되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770년에 간행된 ‘백만탑다라니경’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이라고 주장한다.  영향력 있는 대부분의 누리집에서는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868년에 중국에서 인쇄된 불교서적인 ‘Diamond Sutra(금강경)’를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으로 소개하고 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두루마리 형태의 경전이므로 일반적인 서적의 형태와는 다르고,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이라고 한다면 기존의 정보와 충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내용을 미국 인쇄역사협회에 참고자료와 함께 제공하여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인쇄 연표에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로 수록해 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하였고, 지난 5월 하순에 인쇄 연표가 수정되게 되었다. 이제까지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로 소개되었던 ‘Diamond Sutra’의 앞에 붙어 있던 수식어인 ‘The oldest printed text known:’이 삭제되었다. 이렇게 개정된 인쇄 연표가 다른 누리집에서도 인용이 시작되기 시작하여 올바른 정보가 점차 확산되어 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인쇄된 글자를 한 자씩 이미지로 만들어 데이터베이스화해 둔다면 신라시대의 서체를 파악하고 앞으로 발견될 지 모를 고대 유물의 조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해인사 대장경판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장경은 ‘석가모니가 일생 동안 설법한 경전과 계율 및 그 내용에 대해 후대의 사람들이 첨부한 논서, 주석서, 이론서를 집대성한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키는 말’로, 대장경판은 종이에 불경을 인쇄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판이다.(<그림 1>의 아래쪽) 정식 명칭은 ‘해인사 대장경판’ 또는 ‘재조대장경’이지만, ‘팔만대장경’이라는 명칭이 더 친숙하다. 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걸쳐 간행되었다고 하여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만여 장에 달하고 8만 4000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000 법문을 실은 것이 ‘팔만대장경’이라는 이름의 유래로 알려져 있다. <그림 2>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의 전경과 내부의 모습이다.   그림 2.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의 전경과 내부의 모습(출처 : 국가유산청)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팔만대장경 인출본 지난 2016년 5월부터 6월까지 개교 110주년을 기념하여 동국대학교 박물관에서 일본 오타니대학과 공동으로 ‘여시아문(如是我聞) - 깨달음의 길’을 주제로 특별전이 열렸다. <그림 3>의 인출본은 해인사에 소장돼 있는 ‘재조대장경’ 목판으로 찍어낸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일본 오타니대학이 소장하고 있다. 고려 우왕 7년(1381)에 공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재상이었던 염흥방과 염제신 등 16명이 시주하여 인출한 것으로, 이색의 발문이 붙어 있다. ‘여흥군 신륵사대장각기’와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이 경전은 여주 신륵사에 봉안돼 오다가 조선 태종 14년(1414)에 일본 국왕에게 선물로 보내졌던 것이 600년 만에 한국 땅을 밟게 된 것이다.      ■ 자세한 기사 내용은 PDF로 제공됩니다.
작성일 : 2024-08-05
필사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문화유산 분야의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와 활용 사례 (7)   지난 호에서는 우리나라의 인쇄문화와 인쇄기술사를 이해하는데 고서 자형(字型) 데이터베이스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1448년에 인쇄된 ‘동국정운’, 1377년에 인쇄된 ‘직지’, 1239년에 인쇄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금속활자 인쇄본과 16세기에 목판으로 번각된 목판인쇄본의 글자의 크기와 모양도 비교해 보았다. 지난 십 수년간 이어진 금속활자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관해서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고서 자형, 활자의 크기, 모양, 특징 등에 관한 종합적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중요성과 문화유산, 역사, 기술사, 인문학 분야에서의 활용 사례 및 활용 가능성에 관하여 살펴 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필사본 고서에 나타난 서체와 필사본 고서에 관한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과 인문학 및 문화유산 분야에서의 활용 사례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한다. 한글의 창제와 반포에 사용된 판본체를 시작으로 한글 서체의 변화,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다양한 한글 글자체를 소개하고 현대 한글 서체의 형성에 이르기까지의 변화를 살펴본다.   ■ 연재순서 제1회 이미지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 제2회 서화, 낙관, 탁본 데이터베이스 제3회 옛 사진 데이터베이스 제4회 한지 데이터베이스 제5회 고지도 데이터베이스  제6회 고서 자형 데이터베이스 제7회 필사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8회 목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9회 금속활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10회 근대 서지 데이터베이스  제11회 도자기 데이터베이스 제12회 안료 데이터베이스   ■ 유우식 웨이퍼마스터스의 사장 겸 CTO이다. 동국대학교 전자공학과,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과 미국 브라운대학교를 거쳐 미국 내 다수의 반도체 재료 및 생산설비분야 기업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재료, 공정, 물성, 소재분석, 이미지 해석 및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객원연구원, 국민대학교 산림과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문화유산회복재단 학술위원이다. 홈페이지 | www.wafermasters.com   그림 1. 월인석보 권1에 수록된 ‘훈민정음언해’의 판본체(국립한글박물관 소장)   판본체 지난 호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인쇄술의 발명은 대량의 정보 공유와 지식의 보급을 가능하게 하여 인류 문화사 및 기술사적 측면에서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에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월인석보’ 권1에 수록된 ‘훈민정음언해’의 이미지를 소개하였다. 인쇄 기술로 인쇄하여 기성품처럼 동일한 글자 크기, 모양, 패턴으로 인쇄된 것으로 이러한 글자를 판본체(版本體/板本體)라고 하며, 손으로 쓰거나 이미 쓰여진 글을 손으로 옮겨 적은 필사본(筆寫本)과 구별된다. 한글 판본체는 한자의 전서(篆書)나 예서(隸書)의 획을 본으로 삼아서 쓴 것으로 획의 굵기가 일정하고 사각형에 가까운 틀을 가지고 있으며, 문자의 중심을 가운데에 두고 좌우가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훈민정음 반포 당시의 15세기부터 나타난 글자체이지만 시각적으로 무게감과 안정감을 가지고 있다. 한글 판본체는 초성에 사용되는 자음과 함께 쓰는 모음에 따라 자음의 폭이 넓거나 좁게 변하고 받침의 유무에 따라서 초성과 중성의 크기가 달라진다.  ‘판본체’라는 이름은 목판인쇄와 활판인쇄에서 많이 사용하였다고 하여 붙여졌으며, 고체 또는 반포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훈민정음이 고안되고 반포될 당시의 서적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글자가 반듯하고 획이 굵은 서체로, 가독성도 좋고 비석이나 활자를 조각할 때에도 유리한 점이 많으나 붓글씨로 쓰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다. 훈민정음 반포 후에 여인들이 붓글씨를 많이 쓰면서 궁서체가 확립되어 갔다.    한글 서체의 변화 지난 2019년 4월 30일부터 두 달간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가 세종대왕역사문화관 기획전시실에서 세종대왕 탄신 622돌을 기념하여 ‘조선시대 한글서체의 아름다움’ 기획전을 개최했다. 한글 서체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조선 전기·중기·후기로 나누어 시기별 대표 유물을 선보였다. 조선 전기 서체는 판본체 혹은 판각체(板刻體)라고 불리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틀 속에서 동일한 두께와 각진 획의 모습으로, 필기보다는 인쇄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한글 창제 당시 한글의 형태는 당시 일반적인 필기도구인 붓으로 쉽게 쓰기 어려운 기하학적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용비어천가’와 지난 호에 소개한 ‘동국정운’ 등의 고서에는 당시 한글 서체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조선 중기 한글 서체의 특징은 보물로 지정된 17세기의 편지를 모아 놓은 ‘숙명신한첩’을 통해 알 수 있다. ‘숙명신한첩’의 글씨는 다음 절에서 시대순으로 정리한 한글 문서의 그림에서 볼 수 있다.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536~1537)을 거치면서 한글 서체는 궁체를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조선 초기의 판본이나 활자본의 기본 형태에 붓으로 쓴 느낌이 가미되기 시작하여,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는 궁체의 전형(典型)이 만들어지게 된다. 궁체는 주로 왕실의 필사본 서적에서 빼어난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조의 부인 효의왕후가 필사한 한글 소설 ‘곽자의전’과 ‘만석군전’의 이미지도 그림으로 소개한다. 붓의 꺾임과 부드러운 흐름이 매우 조화롭게 구현되어 있다.  한글 서체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국문학의 융성으로 필사가 늘어나던 영조와 정조 대를 거치며 정제되었고, 이후 순조부터 고종 대에 이르기까지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정조의 원손, 세손 시절부터 재위기간에 쓴 한글 편지글, 순조 비인 순원왕후,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의 글씨, 명성황후의 편지 글은 조선 왕실의 한글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이다. 이 밖에도 사대부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와 궁체로 거침없이 쓴 글, 민간에서 베껴 쓴 필사본 소설 등에서 획의 변화와 강약이 느껴지는 선을 엿볼 수 있다.   16세기의 한글 손글씨 1998년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서는 택지 개발이 한창이었다. 이 때 개발 구역 내에 있는 선산의 대대적인 묘지 이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동대학교에서도 만일의 발견에 대비해 관련 유물 조사에 나섰다. 그런데 한 문중이 조상의 묘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던 중 한 무연고 묘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무덤이 고성 이씨 집안의 묘라는 것이 확인되어 고성 이씨 문중에게 이를 알리게 된다. 묘지의 이장과 함께 안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발굴팀도 발굴에 들어갔다. 해당 무덤의 피장자는 이응태로 밝혀졌으며 그의 신장은 185cm로 추정되는 거구였다. 1998년 4월 25일, 이 무덤의 발굴에서 75점의 유물과 함께 한글 편지가 출토되었다.     ■ 자세한 기사 내용은 PDF로 제공됩니다.
작성일 : 2024-07-04
고서 자형 데이터베이스
문화유산 분야의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와 활용 사례 (6)   지난 호에서는 대동여지도를 시작으로 여러 가지 국내외의 고지도를 소개하고 고지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지리 및 역사 정보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지도가 갖는 역사적 의미와 기능에 관하여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살펴보았다. 근대의 측량 기술이 도입되기 전에 제작된 고지도 제작의 목적, 한계, 수록된 정보의 해석에 있어서의 주의점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역사상 특정한 시기, 특정한 장소에 관하여 특정한 시각으로 만들어진 고지도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과 문화유산, 역사, 인문학 분야에서의 해석 및 활용사례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고서 자형(字型)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과 문화유산, 역사, 기술사, 인문학 분야에서의 활용사례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한다. 금속활자 인쇄본과 목판 인쇄본의 글자 크기와 모양을 비교해 보고, 금속활자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관해서도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 연재순서 제1회 이미지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 제2회 서화, 낙관, 탁본 데이터베이스 제3회 옛 사진 데이터베이스 제4회 한지 데이터베이스 제5회 고지도 데이터베이스  제6회 고서 자형 데이터베이스 제7회 필사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8회 목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9회 금속활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10회 근대 서지 데이터베이스  제11회 도자기 데이터베이스 제12회 안료 데이터베이스   ■ 유우식 웨이퍼마스터스의 사장 겸 CTO이다. 동국대학교 전자공학과,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과 미국 브라운대학교를 거쳐 미국 내 다수의 반도체 재료 및 생산설비분야 기업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재료, 공정, 물성, 소재분석, 이미지 해석 및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객원연구원, 국민대학교 산림과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문화유산회복재단 학술위원이다. 홈페이지 | www.wafermasters.com   그림 1. 우리나라에서 세계최초로 개발한 금속활자 인쇄술을 기리기 위하여 발행된 기념우표   인쇄술의 발명과 의미 인쇄술의 발명은 손으로 옮겨 적어야 했던 필사본(筆寫本) 시대에서 동일한 내용을 동일한 글자체로 간본(刊本)의 형태로 만들게 됨으로써, 대량의 정보 공유와 지식의 보급이 가능해졌다. 이는 인류 문화사 및 기술사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필사본을 만드는 경우에는 일단 옮겨 적을 내용을 보고 부분적으로 암기하여 다른 종이에 써 내려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옮겨 적은 사람은 내용을 적어도 한 번은 암송을 하고 손으로 적는 수고를 하게 되어 내용에도 익숙해진다. 그러나 책의 형태로 보급된 정보는 읽는 사람이 직접 옮겨 적은 것이 아니며, 그 내용도 선택적으로 읽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이해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책을 읽었을 때 의미가 통하지 않으면 백 번쯤 읽으면 의미가 통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스스로 수고를 해야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시험공부를 할 때를 회상해 보아도, 눈으로 보기만 한 것과 내용을 요약하면서 여러 번 옮겨 적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공부한 내용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기억력의 차이는 확연하다. 수많은 정보를 일일이 손으로 옮겨 적어 가면서 습득해야 한다면 그것은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옮겨 적으면서 잘못 적기도 한다. 문명의 이기를 적당히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쇄술의 발명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꼽히고 있다. 간본의 형태로 글자나 그림을 나무판에 새겨 먹을 묻혀 종이에 전사(傳寫)하는 목판 인쇄 방식이 개발되었다. 초등학교 때 반으로 자른 감자에 글을 새겨서 종이에 도장처럼 찍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기록 상으로는 중국 한나라 시대에 목판으로 간단한 글을 인쇄했다고 전해지나 남아있는 유물은 없다. 현재까지 확인된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본은 한국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1966년 10월 13일 경주 불국사 석가탑 보수를 위하여 탑을 해체하다가 발견한 불교 경전으로, 704년에서 751년 사이에 인쇄된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서양의 목판 인쇄 기술은 14세기 후반에 독일, 네덜란드, 북부 이탈리아에 해당하는 스위스 알프스 남쪽에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목판 인쇄는 필사작업에 비해서 작업 효율이 훨씬 높아지기는 하였으나, 나무판에 한 장씩 새긴 후 먹을 칠해서 종이에 찍어내는 방식이므로 인쇄해야 할 모든 내용을 목판으로 새겨야 했다. 인쇄에 사용된 목판은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사용하여 인쇄할 수 있다. 고려 때 몽골의 침입을 물리쳐달라는 기원을 하며 목판으로 새긴 것으로 알려진 세 개의 대장경 중 하나인 ‘팔만대장경’은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현존하는 대장경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 등으로 목판 제작 당시 동아시아 불교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꼽히는 ‘팔만대장경’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여기에 더해 금속활자도 우리나라에서 세계최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또는 ‘직지’가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안타까운 것은 직지 원본은 국내에는 없고 프랑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인쇄에 활용했다는 명예에만 만족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필자가 오래 전부터 조사하여 국내외 학술지에 소개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남명천화상송증도가’ 인쇄본 가운데 한 권은 1239년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따라서 추가적인 검증과 국제적인 공인이 이루어진다면 직지보다 138년 빠른 시기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멀지 않은 시기에 우리나라의 인쇄기술사를 다시 쓰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림 1>에 우리나라에서 세계최초로 개발한 금속활자 인쇄술을 기리기 위하여 발행된 여러 가지 기념우표를 모아서 소개하였다. 왼쪽 아래는 북한에서 발행한 금속활자 기념 우표이다. 남북한 모두 우리의 금속활자 발명과 인쇄술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우표에 담았음을 알 수 있다.     ■ 자세한 기사 내용은 PDF로 제공됩니다.
작성일 : 2024-06-03
고지도 데이터베이스
문화유산 분야의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와 활용 사례 (5)   지난 호에서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전통 한지에 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중요성과 문화유산 분야에서의 활용 사례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데이터베이스에 어떠한 정보가 유용한 정보인지를 판단하기 위하여 종이의 역사와 동아시아 전통 종이의 차이를 정리하였다. 한지 제지 공정, 한지의 다양한 명칭, 한지의 특징, 한지의 원료, 한지의 색상 및 빛의 투과 특성, 전통한지의 우수성과 전통 계승 및 보존의 중요성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국내외의 고지도를 소개하고 고지도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지리 및 역사 정보에 관하여 살펴본다. 근대의 측량 기술이 도입되기 전에 제작된 고지도의 한계와 수록된 정보의 해석에 있어서의 주의점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고자 한다. 고지도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과 문화유산, 역사, 인문학 분야에서의 해석 및 활용 사례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한다.   ■ 연재순서 제1회 이미지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 제2회 서화, 낙관, 탁본 데이터베이스 제3회 옛 사진 데이터베이스 제4회 한지 데이터베이스 제5회 고지도 데이터베이스  제6회 고서 자형 데이터베이스 제7회 필사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8회 목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9회 금속활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10회 근대 서지 데이터베이스  제11회 도자기 데이터베이스 제12회 안료 데이터베이스   ■ 유우식 웨이퍼마스터스의 사장 겸 CTO이다. 동국대학교 전자공학과,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과 미국 브라운대학교를 거쳐 미국 내 다수의 반도체 재료 및 생산설비분야 기업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재료, 공정, 물성, 소재분석, 이미지 해석 및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객원연구원, 국민대학교 산림과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문화유산회복재단 학술위원이다. 이메일 | woosik.yoo@wafermasters.com  홈페이지 | www.wafermasters.com   그림 1. 대동여지도와 대한민국전도의 유사도와 축척 비교(10리를 4km로 계산하면 대동여지도는 실제의 크기보다 약 25% 크게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지도 국어사전에서는 지도(地圖)를  ‘지구 표면의 상태를 일정한 비율로 줄여, 이를 약속된 기호로 평면에 나타낸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근대 이후에 제작된 지도를 바탕으로 한 설명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에는 수치 정보를 바탕으로 한 지리 정보 시스템(GIS :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과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를 사용하여 항공기, 선박, 자동차 및 보행자의 위치를 무선으로 안내하는 시스템이 사용되고 있다. 지도의 수치 정보와 자신의 위치 정보는 컴퓨터에서 처리되며 화면에 표시된다. 물론 전통적인 방법으로 종이에 인쇄하여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나라 지도 제작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이전에도 외부와 교류가 활발했고 기록 활동도 있었으므로, 어떠한 형태로든 지도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필사에 의한 간단한 약도부터 초기 형태의 지도가 만들어져 활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조선 시대 이후의 것들만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고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지도는 조선 초기인 1402년(태종 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이 지도는 당시 제작된 세계 지도로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뛰어난 지도 중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으나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필사본은 일본 류코쿠대학이 소장하고 있다. 일본 텐리대학과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는 필사 모사본이 있다.  조선 전기에는 국토의 측량을 기초로 우리나라 영토의 부분부분을 그린 지도가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전도(全圖)로는 1530년(중종 25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팔도총도’를 들 수 있다. 이 전도는 특정 지역의 지역적 성격을 종합적으로 지도와 함께 기록한 지지(地誌)를 보완하는 형태로 부도(附圖)의 형식을 영토의 전체적인 모양을 두 면에 수록하였으며 대표적인 산, 강, 고을의 이름이 간략하게 적혀 있다.    대동여지도 개항 이전인 1876년(고종 13년), 근대적 측량이 이루어지기 전에 제작된 한반도의 지도 중 가장 정확한 지도로 꼽히는 것이 ‘대동여지도’이다. 김정호가 1861년(철종 12년)에 지도첩의 형태로 제작한 한반도의 지도이다. 접었을 때의 책의 크기는 가로 20cm, 세로 30cm로 보관과 운반이 용이하게 만들어졌다. 지도는 가로 19판, 세로 22층(또는 22첩)으로 이루어졌다. 지도의 축척을 나타내는 방안(方眼)에 의하면 지도의 한 면은 가로 80리, 세로 120리에 해당하며 지도의 두 면이 한 장의 목판으로 인쇄되었다. 지도를 펼치면 가로 약 3.8m, 세로 약 6.7m에 이른다. 현재 세 건이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동여지도의 인쇄에 사용된 목판이 2008년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재의 한반도 지도의 윤곽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1834년(순조 34년)에 제작하고 1840년대까지 3차례에 걸쳐 개정한 ‘청구도’와 1530년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동여지도의 백두산 부분을 살펴보면 단순한 지리 정보 뿐만 아니라 청나라와의 국경을 정한 내용, 청나라와 조선의 담당자, 비석을 세운 날짜 등을 기록하여 세운 비석인  정계비(定界碑)의 위치까지 표시되어 있다.(그림 2) 정계비를 세운 날짜는 강희 51년 5월 15일로 1712년(숙종 38년)의 일이다. ‘강희임진정계(康熙壬辰定界)’라고 적혀 있어 청나라 강희제의 임진년인 1712년에 청나라와 조선의 경계를 정해서 비석을 세운 것임도 기록해 두었다. 대동여지도가 1861년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149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셈이다. 이처럼 고지도에는 단순한 지리 정보뿐만 아니라 역사 정보도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귀중한 역사 연구자료로서의 가치도 매우 높다.    그림 2. 대동여지도에 그려진 백두산 부분.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을 표시하기 위하여 1712년 5월 15일에 세워진 백두산정계비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대동여지도는 100리(里)를 1척(尺)으로, 10리를 1촌(寸)으로 한 백리척(百里尺) 축척의 지도이나 당시의 10리를 현재의 길이 단위로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조선 시대의 10리를 오늘날과 마찬가지인 4km로 계산하면 축척은 1 : 16만으로 계산된다. ‘대동지지’와 ‘속대전’의 기록인 “주척(周尺)을 쓰되 6척은 1보(步)이고 360보는 1리(里)이며 3600보는 10리로 된다”라는 내용을 기준으로 축척을 추정하면 1 : 21만 6000이다. 그러나 필자가 현대에 만들어진 지도와 크기가 유사하게 조정하여 대동여지도의 축척을 계산하면 약 1 : 12만 8000이었다. 문헌상의 기록을 바탕으로 추정한 축척과는 25% 또는 69%의 차이가 발생한다. 대동여지도에서는 실제 거리로 약 1280m(=1.28km)에 해당하는 직선 거리가 1cm로 표시된 셈이다.     ■ 자세한 기사 내용은 PDF로 제공됩니다.
작성일 : 2024-05-02
한지 데이터베이스
문화유산 분야의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와 활용 사례 (4)   지난 호에서는 옛 사진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과 그 활용 가능성에 관하여 광화문과 광화문 현판 복원 사례를 통해서 살펴 보았다. 사진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사진 이미지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필요성에 관해서 소개하였다. 또한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의 활용에 있어서 메타 데이터(meta data)와 올바른 태깅(tagging)의 중요성에 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미지 데이터를 통한 역사 퍼즐을 풀어가는 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예시하고, 다른 기록 자료와의 상호 검증 필요성도 강조하였다. 문화유산 복원의 정의와 현실적인 문제점 등에 관해서도 간단하게 소개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종이의 역사, 동아시아의 전통 종이, 한지 제지 공정, 한지의 다양한 명칭, 한지의 특징, 한지의 원료, 한지의 색상, 빛의 투과 특성, 전통 한지의 우수성에 관해서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아울러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전통 한지에 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중요성과 문화유산 분야에서의 활용 사례에 관하여 살펴 본다. 한지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있어서 어떠한 정보를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앞으로 문화유산 분야에서의 활용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관해서 생각해 본다.    ■ 연재순서 제1회 이미지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 제2회 서화, 낙관, 탁본 데이터베이스 제3회 옛 사진 데이터베이스 제4회 한지 데이터베이스 제5회 고지도 데이터베이스  제6회 고서 자형 데이터베이스 제7회 필사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8회 목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9회 금속활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10회 근대 서지 데이터베이스  제11회 도자기 데이터베이스 제12회 안료 데이터베이스   ■ 유우식 웨이퍼마스터스의 사장 겸 CTO이다. 동국대학교 전자공학과,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과 미국 브라운대학교를 거쳐 미국 내 다수의 반도체 재료 및 생산설비분야 기업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재료, 공정, 물성, 소재분석, 이미지 해석 및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객원연구원, 국민대학교 산림과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문화유산회복재단 학술위원이다. 이메일 | woosik.yoo@wafermasters.com  홈페이지 | www.wafermasters.com   그림 1. 한지의 다양한 활용 사례(서화, 책, 등, 한옥 문, 신발, 가방, 불경 등) 종이의 역사 종이의 역사를 소개하기에 앞서 우리의 전통 종이인 한지의 다양한 활용 사례를 <그림 1>에 소개하였다. 한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인 서화, 책, 한옥 재료, 불경을 비롯하여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미한 등의 갓, 신발, 가방 등 다양한 응용제품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종이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양지(洋紙)와 달리 독특한 질감과 특성을 가지고 있어 문화유산의 보수, 서화 작품의 소재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이를 재질로 한 새로운 제품의 개발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각광받는 재료이다. 고대부터 그림 또는 문자를 바위, 벽돌, 동물 가죽, 나무, 대나무 조각 등 다양한 소재에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양가죽을 종이처럼 만든 양피지(羊皮紙, parchment)가, 아시아에서는 얇은 대나무 조각을 재료로 한 죽편(竹片)이 사용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에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papyrus)라고 하는 풀의 섬유로 종이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오늘날 영어에서 ‘종이’를 뜻하는 ‘paper’의 어원이 되었다. 양피지는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양의 가죽으로 만들어 종이처럼 사용되는 물건을 종이에 비유하면서 한자로 종이를 의미하는 지(紙)가 붙었을 뿐, 실제로 종이는 아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종이는 식물에서 셀룰로스(cellulose, 섬유소)를 추출하여 얇은 평면의 막 형태로 만든 것이다. 종이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중국의 채륜(蔡倫)으로 알려져 있다. 삼(麻 : 마), 아마(亞麻) 등에서 섬유를 분리하여 얇은 막의 형태로 걸러서 떠내어 건조시키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방법은 한국과 일본에도 전해져,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지역에 자생하는 식물을 재료로 하여 종이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종이의 발명으로부터 약 600년 후인 710년경에는 중국인 포로에 의해서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까지 전파되었다. 12세기 즈음에 이르러 무어인이 종이 만드는 기술을 에스파냐에 도입하면서 점차 유럽에 전파되었다. 그 후 약 7세기 동안 유럽에서는 식물 섬유와 넝마를 원료로 수작업으로 유럽의 전통 종이가 만들어졌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19세기에는 제지 작업의 기계화가 시작되었으며, 양지의 대량생산으로 이어졌다.    한국, 중국, 일본의 전통 종이 한국, 중국, 일본 모두 전통적인 방식의 수작업으로 전통 종이가 생산되고 있다. 한국의 전통 종이를 한지(韓紙), 중국의 전통 종이를 선지(宣紙, Xuan Zhi), 일본의 전통 종이를 화지(和紙, わし)라고 구별하여 부른다. 동아시아 삼국의 종이는 모두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닥나무를 이용해 종이를 만드는 것은 비슷하지만 각국의 닥나무 품종, 제조 과정이나 첨가되는 재료들이 달라지면서 각 나라 전통 종이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그림 2. 동아시아 전통 종이의 명칭, 원료 및 특징   <그림 2>에 동아시아 전통 종이의 명칭과 특징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소개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한지를 만드는 공방이 전국 각지에 분포하고 있으며, 각 공방마다 다른 재료와 제지 공정으로 종이를 만들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한지의 특징을 표현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 중국, 일본의 전통 종이의 일반적인 특징의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한지는 주로 닥나무를 원료로 만들어 보존성이 탁월하고 질기면서도 유연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문자의 기록, 서화용뿐만 아니라 건축, 공예, 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한지는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 종이 제지법과 다르게 한지 두 장을 서로 붙여서 한 장을 만드는 합지(合紙) 방식이 사용된다. 표면을 매끄럽게 하기 위한 도침(搗砧 : 종이나 가죽 따위를 다듬잇돌에 올려놓고 다듬어서 윤기가 나고 매끄럽게 함)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중국의 선지는 죽피(竹皮), 마피(麻皮), 청단피(靑檀皮), 상피(桑皮)에 볏짚이나 밀짚 등을 섞은 원료로 만든다. 중국의 청단(靑檀)은 느릅나무과의 나무로 한반도에는 자생하지 않는 식물이다. 선지는 한지보다 섬유의 길이가 짧아 종이의 질은 약하지만, 먹 번짐이 고르고 우수하여 서화용으로 적합하다.  일본의 화지는 왜(倭)닥피, 안피(雁皮 : 산닥나무 껍질), 삼지(三枝) 닥피를 원료로 만들며, 부드럽고 유연하다. 종이를 쌍발 뜨기 방식으로 뜨기 때문에 얇은 종이를 여러 번 뜰 수 있어, 종이의 질을 균일하게 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표면 처리로 표면을 고르게 하여 섬세하다. 그러나 먹 번짐이 좋지 않아 먹을 이용하여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에는 그다지 적합하지는 못하다.     ■ 자세한 기사 내용은 PDF로 제공됩니다.
작성일 : 2024-04-01
옛 사진 데이터베이스
문화유산 분야의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와 활용 사례 (3)   지난 호에서는 서화, 낙관, 탁본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과 문화유산 분야에서의 활용 사례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인감도장의 진위문제 판단을 위한 이미지 분석을 통한 유사도 조사 사례도 소개하였다. 또한 근래에 문제가 되었던 천경자 화백과 이우환 화백의 작품으로 위작 시비가 일었던 사례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옛 사진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과 그 활용 가능성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한다. 사진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함께 생각해 본다. 목적 없이 촬영되는 사진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문제도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촬영된 이미지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필요한 관련 지식, 경험, 안목의 중요성에 관해서도 소개한다.   ■ 연재순서 제1회 이미지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 제2회 서화, 낙관, 탁본 데이터베이스 제3회 옛 사진 데이터베이스 제4회 한지 데이터베이스 제5회 고지도 데이터베이스 제6회 고서 자형 데이터베이스 제7회 필사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8회 목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9회 금속활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10회 근대 서지 데이터베이스 제11회 도자기 데이터베이스 제12회 안료 데이터베이스   ■ 유우식 웨이퍼마스터스의 사장 겸 CTO이다. 동국대학교 전자공학과,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과 미국 브라운대학교를 거쳐 미국 내 다수의 반도체 재료 및 생산설비분야 기업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재료, 공정, 물성, 소재분석, 이미지 해석 및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객원연구원, 국민대학교 산림과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문화유산회복재단 학술위원이다. 이메일 | woosik.yoo@wafermasters.com 홈페이지 | www.wafermasters.com   역사 퍼즐(시간적 공간적 퍼즐) 조각 퍼즐(jigsaw puzzle)은 완성된 이미지를 여러 조각으로 분할하여 분할된 이미지를 여러 가지 조합으로 평면에 배치하여 본래의 이미지가 되도록 만들어 가는 게임이다. 모든 이미지는 어느 특정한 시각에서의 정보이다. 즉, 조각 퍼즐은 어느 특정한 시각의 이미지 정보를 공간적으로 분리해 놓은 것을 맞춰가는 것이다. 퍼즐의 모든 조각은 동일한 시각 또는 정지된 이미지의 일부이다. 동영상에서 한 장의 이미지를 뺐다면 그 이미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로 앞의 장면과 바로 다음 장면의 사이에 해당하는 정보이다. 시간적인 전후 관계를 맞춰 가는 시간적 퍼즐이다. 역사 연구는 이러한 시간적, 공간적, 사회적, 문화적 다차원 퍼즐이라고 할 수 있다. 2023년 10월15일 광화문 월대(月臺)가 복원되고 새로운 현판이 공개되었다. 역사적 기록을 통한 고증을 거쳐 1865년에 흥선대원군에 의해서 경복궁 중건이 시작되어 1867년에 완성될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중건 당시의 완벽한 모습은 아니지만 조금씩 원형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   그림 1. 광화문 사진으로 풀어 보는 역사 퍼즐(사진이 촬영된 순서 맞추기)   <그림 1>에 다른 시기에 촬영된 다섯 장의 광화문 사진을 소개하였다. 광화문의 모습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시간을 축으로 역사 퍼즐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떤 순서로 사진이 촬영된 것이며 어느 시기에 촬영된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자. 모든 사진이 촬영된 시기에 직접 현장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이지만, 사진이 촬영된 시기의 폭이 약 100년 가까이 되니 현장을 방문했던 사람이라도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기억이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진의 특징, 풍경, 건물, 차량 등 다양한 정보와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데이터베이스)을 바탕으로 추정하는 과정을 거쳐서 결론을 얻게 될 것이다. 자신이 내린 결론에 확신이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확신하지만 데이터베이스나 기억이 사실과 달라서 오답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다섯 장의 사진 중에서 네 장(B, C, D, E)의 사진에는 큰 서양식 건물이 찍혀 있지만, 첫 번째 사진(A)에는 서양식 건물이 사라졌다는 사실로 힌트를 삼을 것이다. 또한 서양식 건물만 찍혀 있는 오래된 것 같은 사진(E)도 있으므로, 광화문이 서양식 건물을 세운 다음에 건립된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B, C, D의 사진은 지나가는 행인의 옷차림, 차량의 유무, 차량의 모델 등을 바탕으로 촬영된 순서를 유추하게 될 것이다. 사진 A는 광화문을 남겨두고 서양식 건물만 철거하는 가장 마지막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섯 장의 사진이 촬영된 순서를 추정하면 E → B → D → C → A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실제의 촬영순서는 B → E → D → C → A이다. 사진에서 서양식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당시에는 동양 최대의 근대식 건축물로 1912년 독일인 게오르그 라란데(Georg de Lalande)가 설계하고, 1916년에 광화문 뒤편 경복궁 내에 공사를 시작하여 1926년에 완공되었다.(B) 1945년 해방 후에는 미 군정 청사로,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 직후에는 서울이 함락되어 조선인민군 청사로, 같은 해 9월 28일에는 UN군이 서울을 수복하여 1962년부터 대한민국 중앙청(정부 청사)으로 사용되었다. 1986년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으며, 김영삼 대통령 재임시절인 1995년 8월 15일에 철거를 시작하여 1996년에 철거가 완료되었다. 건물 철거 후 첨탑 부분은 천안 독립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 상세한 기사 내용은 PDF로 제공됩니다.
작성일 : 2024-03-05
서화, 낙관, 탁본 데이터베이스
문화유산 분야의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와 활용 사례 (2)   지난 호에서는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와 문화유산 분야에서의 활용 사례를 소개하기에 앞서, 이미지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에 관하여 간단하게 소개하였다. 유로화 동전의 디자인을 예로 들어 이미지 데이터의 정보, 이미지 데이터의 정확도와 가치, 곡식과 금을 예로 든 순도의 중요성, 효용성과 가치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이미지 데이터와 추가 정보(metadata), 이미지 태깅(tagging)시의 중요성과 주의점을 간단한 손가락 표현인 V 사인과 엄지척 사인 두 가지의 경우를 예로 들어 소개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서화, 낙관, 탁본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과 문화유산 분야에서의 활용 사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회화 작품의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도 살펴본다.   ■ 연재순서 제1회 이미지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 제2회 서화, 낙관, 탁본 데이터베이스 제3회 옛 사진 데이터베이스 제4회 한지 데이터베이스 제5회 고지도 데이터베이스 제6회 고서 자형 데이터베이스 제7회 필사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8회 목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9회 금속활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10회 근대 서지 데이터베이스 제11회 도자기 데이터베이스 제12회 안료 데이터베이스   ■ 유우식 웨이퍼마스터스의 사장 겸 CTO이다. 동국대학교 전자공학과,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과 미국 브라운대학교를 거쳐 미국 내 다수의 반도체 재료 및 생산설비분야 기업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재료, 공정, 물성, 소재분석, 이미지 해석 및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객원연구원, 국민대학교 산림과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문화유산회복재단 학술위원이다. 홈페이지 | www.wafermasters.com   그림 1. 수 많은 인장이 찍혀 있는 김정희의 그림 ‘불이선란(不二禪蘭)’   서화와 인장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대만, 일본, 베트남 등의 한자 문화권 국가에서는 서화 작품에 여러 가지의 인장이 찍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장을 낙관(落款)이라고 부른다. 글씨나 그림을 완성한 다음 작품을 완성한 시기와 장소, 자신의 이름, 호 등을 작품에 쓰고 인장을 찍는 것을 낙관이라고 한다. 작자가 누구이며 언제 완성한 것인지를 적는 의미 외에도 작품을 완성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림 1>에 많은 인장이 찍혀 있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금석학자, 고증학자, 화가, 실학자였던 추사 김정희의 그림인 ‘불이선란(不二禪蘭)’을 예시하였다. ‘불이선란’은 김정희의 마지막 난초 그림으로 2023년 6월에 문화재청이 보물 지정을 예고하였다. 하나의 그림에 무려 15개의 인장이 찍혀 있다. 모두가 김정희의 인장일까? 모두 같은 날 찍은 낙관일까? 자세한 것은 뒤에 소개하기로 하고, 우선 낙관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자. 낙관은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줄임말로 알려져 있다. 옛날 중국에서 구리 또는 청동으로 만든 그릇이나 솥과 같은 동기(銅器) 등에 글자를 새기는 풍습이 있는데, 새겨진 글자를 각명(刻銘) 또는 명문(銘文)이라고 한다. 새겨진 글자 중에서 글자의 모양을 파서 새긴 글자를 음각자(陰刻字)라고 하는데 이것을 ‘관(款)’이라고 부르고, 글자 주변을 파서 글자의 모양이 튀어 나오도록 새긴 글자를 양각자(陽刻字)라고 하며 이것을 ‘지(識)’라고 하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낙관은 서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의 밑면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요즈음 제작된 도자기나 찻잔의 밑면을 보면 제작자의 낙관 또는 제작회사의 상호가 표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품질 보증 역할을 겸하고 있다. 추사박물관을 취재한 2022년 11월 29일자 KBS 뉴스에 의하면, 김정희의 친필 기록을 해석한 결과 ‘추사’는 김정희의 호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1809년 김정희가 스물 네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에 가서 그곳 사람들과 필담으로 주고 받은 대화에 의하면, 청나라 인사가 자기소개를 청하자 이름(名)은 정희, 자(字)는 추사, 호(號)는 보담재(寶覃齋)라고 스스로 밝혔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추사’는 김정희의 호가 아니었다. 거의 200년만에 밝혀진 사실이다. 이처럼 널리 알려진 상식도 사실과 다른 경우가 의외로 많다. 여기서 ‘자’는 성인이 되는 관례(冠禮)를 치르면 어른이 지어준 별칭이고, ‘호’는 누구나 허물없이 부르고 쓸 수 있도록 지은 별명이다.   낙관의 구분과 의미 서화에 낙관을 찍기 시작한 것은 송나라 시대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낙관은 작품의 작가, 제작시기 및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도장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화에 낙인된 낙관의 개수, 위치 및 길이로 구분하여 여러 가지 명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낙관은 손으로 쓰는 수인(手印)인 경우도 많으나, 대부분의 작품에서 손으로 쓰더라도 도장을 찍는 경우가 많아서 도장을 낙관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손으로 낙관을 적는 수인의 경우 작품에 작가의 정보만 낙인하는 경우는 단관(單款)이라고 하며, 작품을 받는 사람의 정보까지 기록하는 경우를 쌍관(雙款)이라고 하여 구별한다. 작품을 받을 사람의 정보를 먼저 기록하고 작가의 정보를 나중에 기록하는 관례에 따라서 받을 사람에 관한 정보를 상관(上款)이라고 하고, 작가의 정보를 하관(下款)이라고 한다. 관기(款記)의 길이로 구분하여 길이가 긴 장관(長款)과 길이가 짧은 단관(短款)으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길고 짧음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자의적인 해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낙관에 사용되는 도장을 기능별로 구분하면 작가의 이름을 음각으로 새긴 성명인(姓名印), 작가의 호를 양각으로 새긴 호인(號印), 서화의 첫머리에 찍는 두인(頭印), 서화 수집가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소장인(所藏印)으로 크게 나뉜다. 특별한 형식을 정하지 않고 찍는 낙관은 유인(遊印)이라고 부르며, 좋아하는 문구나 글자를 새겨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림 2. 김정희의 ‘불이선란(不二禪蘭)’도에 찍힌 15개의 낙관과 의미   김정희의 그림 ‘불이선란’에 찍힌 낙관 ‘불이선란’에는 모두 15개의 낙관이 찍혀 있다.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부터 15개가 찍힌 것일까? 모두 작자인 김정희의 낙관일까? 약 200년 전에 활동하던 선조의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자. 현대에도 한 사람이 여러 개의 도장을 갖는 경우가 많다. 막도장, 인감도장 등 용도에 따라서 사용한다. 요즈음에는 서명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지만 도장을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김정희는 71세까지 생존했으므로 여러 개의 도장이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작품에 가지고 있는 도장을 전시하듯 낙관을 마구 찍어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서 좋아하는 글귀도 달라지는 법이므로, 작품 활동 시기에 따라서 유행처럼 낙관의 조합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15개의 낙관은 여러 가지 낙관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누구의 것인지 어떤 의미로 찍은 것인지 확인되었다.(그림 2)   ■ 상세한 기사 내용은 PDF로 제공됩니다.
작성일 : 2024-02-02
이미지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
문화유산 분야의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와 활용 사례 (1)   이번 호부터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와 활용 사례에 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학 또는 공학 분야의 전문가에게는 조금 낯설기도 하고 뜬금없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으나, 문화유산 분야에서 이미지 데이터의 활용 가능성에 관한 내용을 연재할 예정이다. 예전에는 대상물의 시각적 정보를 수작업으로 스케치하는 단계에서 기계적인 방법으로 기록하는 수단으로 유리 건판이나 필름을 이용한 사진 기술을 개발하여 사용해 왔다. 사진은 촬영 당시의 상태를 기록한 타임 캡슐이다. 과거에 촬영된 사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앞으로 촬영하게 될 사진에서는 어떤 정보를 추가해서 기록하면 좋을까? 이미지 데이터와 효과적인 활용을 위한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에 관하여 살펴보자.   ■ 연재순서 제1회 이미지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 제2회 서화, 낙관, 탁본 데이터베이스 제3회 옛 사진 데이터베이스 제4회 한지 데이터베이스 제5회 고지도 데이터베이스  제6회 고서 자형 데이터베이스 제7회 필사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8회 목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9회 금속활자본 고서 데이터베이스  제10회 근대 서지 데이터베이스  제11회 도자기 데이터베이스 제12회 안료 데이터베이스   ■ 유우식 웨이퍼마스터스의 사장 겸 CTO이다. 동국대학교 전자공학과,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과 미국 브라운대학교를 거쳐 미국 내 다수의 반도체 재료 및 생산설비분야 기업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재료, 공정, 물성, 소재분석, 이미지 해석 및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객원연구원, 국민대학교 산림과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문화유산회복재단 학술위원이다. 이메일 | woosik.yoo@wafermasters.com  홈페이지 | www.wafermasters.com   그림 1. 유럽 각국의 통화(동전) 및 결제수단의 변화   유럽 여행 유럽은 아시아와 이어진 대륙으로 우랄산맥과 캅카스산맥, 우랄강, 카스피해, 흑해와 에게해에 이르는 지역이다. 유럽의 면적은 1018만㎢로 지구 표면적의 2% 또는 육지 전체 면적의 약 6.8%에 해당한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 1917년의 러시아 혁명,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 1989년에 일어난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시작으로 냉전 체제가 무너지면서 여러 나라들이 분리 독립하여 현재 유럽은 약 50개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과 인구면에서는 러시아가 가장 크고 바티칸 시국이 가장 작다. 유럽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약 11%에 해당하는 7억 3900만 명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다음으로 많다. 유럽의 정치 경제 통합을 실현하기 위하여 1993년 11월 1일 발효된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따라 유럽 12개국이 참가하여 연합 기구인 유럽연합(EU)이 출범했다. 2023년 현재 유럽연합 가입국은 27개국이다. 27개국을 모두 합치면 인구는 약 5억 명에 달한다. 유럽연합 가입국 27개국 중 20개국에서 공통화폐로 유로(Euro)를 사용하고 있다. 유로화는 1999년 1월 1일에 유로회원국의 통화로 승인되어, 2002년 1월 1일부터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유럽연합이 출범하고 유로화가 도입되기 전인 2002년까지는 여행이나 출장으로 유럽을 방문하는 경우 나라마다 다른 지폐와 동전을 사용해야 했다.(그림 1) 유럽에는 작은 나라들이 국경을 맞대고 있고 국경을 건너서 여러 나라를 통과하는 일이 많아서, 유럽 여행을 마치면 많은 나라의 지폐와 동전이 쌓이곤 했다. 금액이 큰 것은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일용 잡화나 식품을 구입할 때는 신용카드를 사용하기 어려워 현금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현지의 지폐와 동전이 쌓일 수 밖에 없었다. 단기간의 여행인 경우에는 현지 화폐에 적응되지 못한 상태라서 지폐를 주고 거스름돈을 받게 되니 동전만 잔뜩 모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유로화가 통용되고 현금보다는 신용카드 또는 스마트페이 등 결제수단이 다양해져서, 동전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여행의 모습도 많이 달라지고 편리해졌다.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 유로 동전은 액면가에 따라서 직경도 두께도 재질도 디자인도 다르다. 앞면의 디자인은 공통이나 뒷면은 나라별로 다른 디자인을 채용하고 있다.(그림 2) 유로화 동전이 유럽 전역에서 통용되므로 공통분모는 동전의 앞면이다. 뒷면은 나라마다 디자인이 다르므로 수십 가지의 디자인을 액면가마다 전부 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한 한 나라에서 여러가지 디자인을 도입하기도 하여 뒷면의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된다. 유럽연합 27개국 중에서 20개국에서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으며 7개국에서는 자국의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면서도 특별한 협정에 의하여 유로화를 발행하고 사용하는 나라도 있다. 모나코, 산마리노, 바티칸 시국이다. 2 유로 동전의 경우 바티칸 시국이 2002, 2005, 2006, 2013, 2015, 2017년에 새로운 디자인의 동전을 발행하여 6가지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다. 교황이 바뀌거나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동전 하나하나를 데이터라고 한다면 동전의 액면가, 앞뒷면의 디자인, 발행년도, 발행 국가 등에 관한 정보는 데이터베이스라고 할 수 있다.(그림 2) 우리가 동전을 보고 액면가를 인식하는 것은 동전의 이미지 데이터를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여 데이터의 의미를 확인하여 사용하는 것이고, 그 동전을 받은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이미지 데이터를 자신의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여 판정하는 방법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기계가 동전을 받아들이는 경우에도 같은 방식이 적용되지만, 동전의 크기나 무게와 같은 추가적인 정보로 데이터의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그림 2. 유럽 각국에서 통용되는 유로화 동전의 앞면과 뒷면(실제 동전의 크기는 액면가에 따라 다름)      ■ 자세한 기사 내용은 PDF로 제공됩니다.
작성일 : 2024-01-04
입체 이미지 정보의 유혹과 과제
이미지 정보의 취득, 분석 및 활용 (12)   지난 호에서는 ‘정보의 가시화’ 또는 ‘정보의 시각화’와 그 중요성에 관하여 여러 가지 사례를 바탕으로 소개하였다. 데이터의 시각화 사례를 다양한 주제의 인포그래픽(infographic)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정보의 시각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정보가 의도와 다르게 왜곡되거나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정보의 수집 못지 않게 정보의 분류와 올바른 태깅(tagging)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올해의 연재를 마치면서 ‘입체 이미지 정보의 유혹과 과제’라는 주제로 ‘입체 이미지 정보의 자료화’와 ‘정보의 입체적 시각화’에 동반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과 제약에 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다차원 정보의 효과적인 시각화에 따른 과제와 전망에 관해서도 소개하고자 한다.   ■ 연재순서 제1회 측정의 목적(호기심, 정보 수집) 제2회 단위(비교의 기준) 제3회 길이 측정 제4회 무게 측정 제5회 시간 측정 제6회 에너지 측정 제7회 정적 측정과 동적 측정 제8회 측정 결과의 분석 제9회 분석 결과의 활용 제10회 제어(수동, 자동, 반자동, 학습형) 제11회 정보의 가시화 제12회 입체 이미지 정보의 유혹과 과제   ■ 유우식 미국 웨이퍼마스터스(WaferMasters)의 사장 겸 CTO이다. 동국대학교 전자공학과,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과 미국 브라운대학교를 거쳐 미국 내 다수의 반도체 재료 및 생산설비분야 기업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재료, 공정, 물성, 소재분석, 이미지 해석 및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 공학연구과 공동연구원,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객원연구원, 국민대학교 산림과학연구소 연구원, 문화유산 회복재단 학술위원이다.  이메일 | woosik.yoo@wafermasters.com 홈페이지 | www.wafermasters.com   그림 1. 외형만으로는 과육의 색상이나 씨의 유무를 판단하기 어려운 다양한 품종의 수박   겉모습과 실체  사물, 현상 또는 사람의 겉모습만으로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까? 경험과 지식을 통해서 추정은 가능하지만 실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추정한 결과가 높은 확률로 맞는 경험을 한 사람은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가질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겉모습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에 주저하게 될 것이다. <그림 1>에 소개한 다양한 종류의 수박 사진만 보아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박의 이미지와 다른 것도 포함되어 있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새로운 품종의 수박을 개발하여 과육의 색이나 외형이 달라진 것이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수박이라고 생각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박이라고 분류해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하게 되면 점점 수박에 대한 정의와 개념에도 변화가 생기게 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겉모습만으로 실체를 올바르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겉모습은 많은 특징 중의 하나일 뿐이다. 과육이 노란 수박만 경험해 온 사람에게는 수박의 과육은 노란색이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빨간색 과육의 수박이 수박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른 특징을 종합적으로 비교해서 수박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시한폭탄처럼 생긴 수박도 잘라도 보고 맛도 보고 한 다음에나 수박으로 인정될 것이다. 학습에 의해서 어떤 개념을 접하고 한정된 경험을 하게 되면 사물, 현상 또는 사람에 대한 판단 기준이 제한적이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면 대체로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된다. 아마도 학생 시절에는 교과과정에 따른 학습에 의해서 옳고 그름의 경계가 명확하다고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모든 경계가 모호한 것임을 느껴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그것도 누군가에 의해서 구분되어 이름이 붙여졌을 뿐, 그다지 큰 의미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가가 수박의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어떻게 답하게 될까? 아마도 학습이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수박의 형태, 크기, 구조, 색상, 맛 등에 관한 정보를 나열하게 될 것이다. 모든 특징을 전부 알지도 못하거니와 모든 경우를 나열할 수도 없으므로, 알고 있는 범위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특징을 몇 가지 나열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것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수박의 판단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조금 다른 수박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미지 정보의 겉모습과 실체도 이와 같이 보는 이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서 다르게 판단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림 2. 수박의 활용 목적과 용도에 맞게 절단하는 다양한 방법   목적에 맞는 활용 계속해서 수박 이미지를 예로 들어 정보의 활용에 관해서 생각해 보자. 눈 앞에 수박이 하나 있다고 하자. 관상용일 수도 있고 간식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수박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치게 될 지도 모른다. 수박을 음식물로 섭취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잘라서 어느 부분을 먹을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림 2>에 다양한 수박 절단 방법을 예시하였다. 같은 수박이라도 자르기 쉬운 방법으로 자를 것인가, 먹기 좋게 자를 것인가, 보기 좋게 자를 것인가, 다른 요리에 사용하기 좋게 자를 것인가, 관상용으로 자를 것인가를 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목적이 정해져야 할 것이다. 수박을 보고 목적을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목적을 정해 놓고 수박을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미지 정보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지를 보고 정보를 추출하는 방법도 있고 특정의 정보를 추출하기 위해서 이미지를 고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추출하고자 하는 정보가 정해졌다면 그 정보를 최소한의 노력으로 추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미지를 취득할 수 있는 촬영 방법을 고려하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 자세한 기사 내용은 PDF로 제공됩니다.
작성일 : 2023-12-04
[무료다운로드] PLM 시스템 구축의 긴 여정
제조기업의 미래를 위한 PLM 이야기 (10)   2023년 2월부터 10회에 걸쳐 ‘제조기업의 미래를 위한 PLM 이야기’를 공유하였다. PLM의 기능적인 부분보다는 토털 비즈니스 솔루션으로서 PLM의 역할과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연재 마지막 회로 실제 PLM의 구축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PLM 담당자가 준비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 정리함으로써, 성공적인 PLM 구축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PLM을 한 번이라도 준비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초기 PLM 기획 단계부터 솔루션 선정, 업체 선정, P&I 설계, 구축, 운영까지 하나의 단계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관련자들의 무관심으로 시작해서 결과물이 도출될 때, 뒷북(?)까지 하나도 쉽게 넘어가는 단계가 없다. PLM 컨설팅&수행 PM으로 경험했던 바를 중심으로 성공적인 PLM 구축을 위해 필자가 체득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 연재순서 제1회 변화하는 시대 그리고 PLM의 변화 제2회 기업의 경영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PLM 제3회 마케팅 요소와 제품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PLM 제4회 상품 기획과 PLM  제5회 인재 관리를 강화할 수 있는 PLM 제6회 Agile Organization으로의 변화와 PLM 제7회 위기의 시대와 PLM 제8회 PLM과 변화 관리 제9회 클라우드 기반의 아키텍처를 고려한 PLM 시스템 제10회 PLM 시스템 구축의 긴 여정   ■ 김성희 VCIS의 대표이자 PLM 컨설턴트이다. 다양한 PLM 솔루션 및 자동차/기계/반도체/CPG 등 산업군의 PLM 컨설팅을 수행했다. 이메일 | pass829@naver.com 블로그 | https://blog.naver.com/pass829   PLM 구축 목표를 설정하라 모든 일의 성공을 위해서는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PLM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PLM 프로젝트를 하면서 PLM 구축의 목적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PLM 프로젝트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얻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구축 담당자와 조직의 구성원들은 명확하게 목표를 인지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PLM 시스템의 목적 확인 PLM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도면 관리의 전산화를 목적으로 PLM을 구축한다고 하면 최종 단계의 목표를 정확하게 세워놓고 PLM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단순 기능이 아닌 시스템의 목표(예 : 조직 내/외부 인원의 자료 공유)를 먼저 수립한 후 단위 기능으로 접근해야 한다.   구축 전 PLM 구축을 위한 PI를 진행하라 PLM 프로젝트의 목적이 명확하게 세워진다면 세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때, 구축업체의 관계자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는다. 유감스럽게 이 부분이 전체 PLM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구축업체의 명확한 니즈를 기반으로 프로젝트의 범위를 정의하고 실제 구현할 프로젝트의 기능적인 범위까지 산정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업체의 PLM 담당자가 많은 준비를 하지만, PLM 전문가가 아닌 이상 세부적인 상황에 대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전체 PLM 구축 비용에 일부만이라도 PLM 구축을 위한 PI 등에 투자를 하는 것이 전체 PLM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토털 비즈니스 솔루션으로 PLM을 구축하라 PLM은 더 이상 R&D 기술 자료의 관리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PLM을 통한 조직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토털 비즈니스 솔루션(total business solution)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제품 기획, 제품의 마케팅 계획 수립, R&D의 인재 관리 등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PLM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에게 좀 더 넓은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는 시스템 즉, 경영적인 마인드를 - R&D의 인원도 설계만 해서는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 할 수 있는 역할을 포함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앞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PLM은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다 PLM 프로젝트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일반적인 경우 1단계 데이터 축적, 2단계 기능 고도화, 3단계 PLM 확장의 단계 등 지속적으로 프로젝트가 연속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 단계별로 수행해야 할 구체화된 항목과 투자 비용, 관계자들의 설득(?) 등이 필요하다.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PLM 구축 담당자가 준비해야 할 항목이 많다. 그리고 담당자도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일이 늘 해피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 자세한 기사 내용은 PDF로 제공됩니다.
작성일 : 2023-12-04